머 리 말 “왜 어떤 민족은 부적을 붙이기보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는가? 왜 어떤 민족은 나이프와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식사하는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결정인(決定因)은 무엇인가?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명료하다.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이 각기 접한 문화적 전통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은 레슬리 화이트(Leslie A. White)가 『문화학』(The Science of Culture, 1969)의 서문에서 주장하는 글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그의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이 숙명론적이고 ‘패배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인간이 교육받은 것도 개인적인 것이지 (집단적 상징체계로서의) 문화가 아니라고 하여 개인의 교육과정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화이트는 “교육도 따지고 보면, 문화가 한 세대나 사람으로부터 다른 데로 옮겨가는 과정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고 응수한다. 그 역시 인간이란 어떤 특정한 문화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문화도 갖지 않은 채 태어나 성장하면서 특정한 문화를 익히며 행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DNA가 우리를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결정한다고 하여 그것이 운명론인가?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패배주의인가?”라고 반문한다. 나아가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도 결정론들이라고까지 단정한다. 실제로 우리의 주변에는 신의(神意)에로 돌리는 의지결정론이나 천양무궁(天壤無窮)의 신칙론(神勅論)을 포함하여 맑스의 토대결정론처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결정론들이 수없이 많다. 물론 그것들을 무조건 패배주의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이트의 생각과는 달리 대개의 경우 그것들이 숙명론적임을 주장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수많은 일본인들이 일본문화와 사상의 특징을 가리켜 ‘아시아의 박물관’·‘문화적 종착역’·‘문화의 조립공장’·‘문화의 용광로’ 등으로 표현하는 의식의 이면에서, 즉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결정론적 숙명론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