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중반월(雲中半月)에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환갑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박사학위논문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인식과 풍수생활 : 황윤석, 위백규, 신경준을 중심으로”를 읽기 쉽도록 약간 손질한 것이다. 왜, 호남, 실학자, 풍수를 화두로 들었을까? 방장산 덕분이다.
필자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다. 호남 삼신산의 으뜸인 방장산 아래 운중반월 형국에, 방장산, 장군봉, 옥녀봉으로 둘러싸인 산정마을이다. 산정, 월산, 석정, 월암, 외정, 수월마을이 옹기종기 어울려 사는 곳, 고창읍의 물머리라서 상면이라고도 불렀다. 오늘의 나를 길러준 고향산천, 생각만으로도 언제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운중반월 우주는 호남정맥 영산기맥 양고살재(일자문성)에서 해가 떠서 옥녀봉으로 해가 지는 사방이 산으로 유정하게 감싸주는 작은 우주였다. 어릴적 철들면서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한 필자는 ‘박주부신의주’ 명당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불평불만 하는 이 하나 없이 모두가 마음부자들이어서 서로 돕고 나눠먹고 울력하며 함께 살던 천국이고 낙원이었다.
그러나 이곳 고향마을이 ‘옥룡자유세비록’에 나오는 전설의 풍수명당 운중반월이라는 것은 공부를 한참하고야 깨우쳤다. 방장산, 옥녀봉, 장군봉이란 산이름 조차도 풍수열쇠 없이는 뜻을 제대로 풀 수 없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 가는 통학길에 있던 성황당길 얕으막한 능선이 옥녀봉 선녀님의 가야금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여섯 마을들은 구름속의 반달을 딴 달 월자月를 쓴 동네 셋, 물가정자汀를 붙인 동네 셋을 조화시켜 땅이름으로 월자와 정자의 문자비보로써 산태극수태극 모양으로 만들고 한가운데 흐르는 물이름이 운월천雲月川이었다. 눈 뜨고 보니, 이곳이 우리 선인들이 만드신 풍수상의 이상국가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 풍수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고창 마실길을 열면서 양고살재에 새로 지은 정자이름을 운월정으로 작명하였다.
땅이름의 조화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동무들과 축구시합을 하거나 편을 갈라야 할 때면 우리는 약속처럼 늘 월자, 정자 편으로 갈랐다. 월자 동네가 셋, 정자 동네가 셋이니 항상 균형이 잘 맞기 때문이다. 이 땅에 터잡고 사는 성씨들도 한결 같이 운중반월 길지를 찾아 세거지를 삼은 것이다. 외정, 월암마을의 조양임씨, 석정, 월산, 월암의 창녕조씨, 산정의 김해김씨, 광산김씨, 강릉유씨, 수월의 직산조씨 등은 모두 운중반월 명당 터에서 가문번영을 꿈꾸며 입향한 것이었다. 풍수의 창으로 바라보니, 내 고향 운중반월 형국은 참으로 아름다운 하늘과 땅에 역사와 사람의 무늬가 새겨진 우주였다. 풍수의 눈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한국문화의 심오함과 아름다움이 아닐까?
필자는 공직의 상당부분을 문화유산 활용, 한류의 산업화, 문화입국이란 화두를 붙들고 문화현장에서 일했다. 필자의 문화현장 경험상으로도 한국전통문화를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풍수가 필수 교양과목이었다. 천지인이 합일상생해야 한다는 하늘그물망의 풍수사상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빛나는 한국의 문화유산이자 사상이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천년 관학인 풍수학이 미신으로 술수로 내쳐진 적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유학자, 실학자 연구에서도 이른바 풍수나 잡학은 소외된 영역이었다. 실학연구에서도 호남파 실학자 연구는 근기학파에 비해 응달진 곳이었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천지인 합일의 조화와 어울림에서 비롯한다. 그동안 햇볕을 덜 본 곳을 돌아보는 일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공직수행을 위해 공부한 행정학, 법학을 거쳐서, 하고싶은 공부인 문사철에 입문하여 늦깍이로 도전한 역사학에서 남들이 덜 찾은 곳을 찾다보니 풍수학과 호남실학자를 만났다. 아마도 나의 기와 맞았으리라. 나는 문사철 공부에서 정혈을 할 수 있을까?
이교구류에 달통한 삼천재의 풍수사상을 좆는 길은 어렵고 험한 길이었다. 이 구산의 길목에서 주산이 되어주시고 때로는 유정한 좌청룡 우백호가 되어서 초학자의 학문의 길을 감싸주신 여러 학은에 감사한다. 필자는 방송대에서 독학을 한 덕분에 박사과정이 최초의 한국 정규대학생활인 셈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는데 주산의 맥이 되어주시고 이 책을 펴내도록 용기를 주신 하우봉 지도교수님께 머리숙여 감사한다. 사학과의 하태규, 한문종 교수님께도 신세를 졌다. 최창조 교수를 이어 한국풍수학계의 희망인 김두규 교수님께서 풍수학을 눈뜨게 해주시고, 숱한 현장답사지도를 해주셨다. 풍수학인 선문대 최낙기 박사님께서는 현장답사와 자료제공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한국 유학사를 새롭게 쓰실 이형성 박사님께는 수시로 한문원전 자문을 받아 늘 기댈 언덕이 되어주셨다. 그밖에도 일일이 거명하지 못하는 사학과와 전북대 이재연구소 학문도반들께도 많은 마음빚을 졌다. 현장답사시 많은 도움을 주신 후손들과 향토사학자들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함을 표한다. 초학자의 모자란 연구를 기꺼이 출판해 주시는 한국학의 보루인 경인문화사와 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 이 연구의 주 원전자료인 『여암전서』와 『존재전서』를 펴낸 곳도 경인문화사가 아니었던가. 감사할 따름이다. 평생 돈버는 일에는 취미가 없는 필자가 제2의 인생도 돈되지 않을 공부에 빠졌는데도, 기꺼이 밀어주는 아내와 아들딸에게도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환갑이 되어 조상님 뼈묻은 고향에 돌아와 한국적 서정성이 잘 담겼다는 이 싯구를 다시 보니, 하늘그물망 속에서 천지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운중반월 사람을 노래하는 풍수시가였다.
당대에는 차별의 땅에서 사시며 큰 벼슬을 못하여 경륜천하의 기회가 없으셨지만, 위대한 사상과 천지인을 달통한 학문적 업적으로 우리의 사표가 되어 역사속에 영원히 사실 위대한 호남의 대학자 신경준, 위백규, 황윤석 세 분의 큰 스승께 모자란 이 책을 삼가 바친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好的,這是一篇將您提供的韓文翻譯成繁體中文的內容:
雲中半月,如雲中之月般緩緩前行的旅人
我在花甲之年取得了博士學位。這本書是將我的博士學位論文《湖南學派實學家的風水觀與風水生活:以黃胤錫、魏伯珪、申景濬為中心》稍作修訂,使其更易閱讀。為何會以湖南、實學家、風水作為探討的主題呢?這要歸功於方丈山。
我的故鄉是全羅北道高敞。這是一個位於湖南三神山之首方丈山下的「雲中半月」形局之地,被方丈山、將軍峰、玉女峰環繞的山中村落。山亭、月山、石亭、月岩、外亭、水月等村莊櫛比鱗次地和諧共處,由於是高敞邑的水源地,因此也曾被稱為「上面」。培養了今日我的故鄉山川,光是想起它,心頭便總是溫暖的「雲中半月」宇宙,是湖南正脈靈山氣脈的羊高薩嶺(一字文星)日出、玉女峰日落,四面被山脈溫柔環抱的小宇宙。從小懂事起便與祖父一同生活的我,是在聆聽「朴主簿申義州」風水寶地故事中長大的。雖然物質上貧困,但沒有一人抱怨不滿,人人都是心靈富足之人,互相幫助、分享、合作,共同生活的樂園和天堂。
然而,我是在深入學習之後才領悟到,這個故鄉村莊便是《玉龍子遊世秘錄》中記載的傳說中的風水寶地「雲中半月」。方丈山、玉女峰、將軍峰這些山名,若沒有風水之鑰,甚至無法正確解釋其含義。我們村通往小學的路上,那座矮小的山脊,原來就是玉女峰仙女的伽倻琴。這裡的六個村莊,將取自雲中半月的「月」字村落三個,與附有水邊亭子「汀」字的村落三個巧妙搭配,以地名中的「月」和「汀」字作為文字避邪,形成了山太極、水太極的形狀,而流淌在中央的溪流則被稱為「雲月川」。睜眼一看,這裡竟是我們古人所創造的風水上的理想國度。為了廣泛傳播這種風水美學,我在開闢高敞「馬實路」時,將羊高薩嶺新建亭子的名字命名為「雲月亭」。
得益於地名的和諧,小學時期,每當與玩伴們進行足球比賽或需要分隊時,我們總是習慣性地分成「月字隊」和「汀字隊」。因為月字村莊有三個,汀字村莊有三個,所以總能保持良好的平衡。在這片土地上定居的姓氏,也都一致尋找「雲中半月」這片吉地作為世代居住之地。外亭、月岩村的祖陽林氏,石亭、月山、月岩的昌寧曹氏,山亭的金海金氏、光山金氏、江陵柳氏,水月的稷山曹氏等,都懷抱著家族繁榮的夢想,遷入「雲中半月」這片風水寶地。透過風水的視窗望去,我的故鄉「雲中半月」形局,真是一個美麗的天地,刻印著歷史與人類紋理的宇宙。這不正是一種非風水之眼無法讀懂的韓國文化的深奧與美麗嗎?
我在公職生涯中,大部分時間都專注於文化遺產的活化、韓流產業化、文化立國等議題,在文化現場工作。根據我的文化現場經驗,要正確解讀韓國傳統文化,風水是必修的通識科目。天地人必須合一相生,這種天羅地網的風水思想,是擁有永恆生命力的璀璨韓國文化遺產與思想。然而,在日據時期,作為千年官學的風水學曾被貶為迷信和術數。或許正因如此,在儒學家、實學家的研究中,所謂的風水或雜學都屬於被邊緣化的領域。即使在實學研究中,湖南學派實學家的研究也相較於近畿學派顯得陰暗。我們的美麗源於天地人合一的和諧與協調。我一直認為回顧那些陽光照射較少的地方是美麗的。我先是學習了為履行公職所需的行政學和法學,之後進入了我想鑽研的文史哲領域,在遲來的歷史學挑戰中,我尋找著別人較少涉足的領域,因此邂逅了風水學和湖南實學家。或許這與我的氣息相投吧。我能在文史哲的學習中找到精髓嗎?
追尋精通「理氣九流」的三千載風水思想之路,是一條艱難險阻的道路。在這九座山脈的關口,感謝成為主山,時而成為有情之左青龍右白虎,庇護初學者的學問之路的諸多恩師。由於我在廣播大學自學,博士班可說是第一次真正意義上的韓國正規大學生活。向在學習韓國史時成為主脈,並鼓勵我出版這本書的指導教授河禹鳳教授致以最深的謝意。我也承蒙史學系河泰奎、韓文宗教授的教導。繼崔昌祚教授之後,身為韓國風水學界希望的金斗圭教授,啟發了我對風水學的認識,並提供了無數次的實地考察指導。風水學界的善門大學崔樂基博士,在實地考察和資料提供方面給予了許多幫助。將重寫韓國儒學史的李炯成博士,經常提供漢文原典諮詢,成為我時常倚靠的靠山。此外,我也虧欠了許多未能一一列舉的史學系和全北大學李在研究所的學術同伴們。在此,也向在實地考察時提供許多幫助的後代子孫和鄉土史學家們表達謝意。感謝韓國學的堡壘——景仁文化社及其員工們,欣然出版了初學者的拙劣研究。這項研究的主要原始資料《呂庵全書》和《存在全書》不也是景仁文化社出版的嗎?我只有滿懷感激。身為一個對賺錢終生沒興趣的人,即使在人生的第二階段又投入了無法賺錢的學習,我依然感謝並抱歉地向支持我的妻子、兒子和女兒表達我的心意。
「如雲中之月般緩緩前行的旅人」——到了花甲之年,回到祖先埋骨的故鄉,再次讀到這句被譽為蘊含濃厚韓國抒情性的詩句,才發現這是一首歌頌在天羅地網中,天地人和諧共存的「雲中半月」居民的風水詩。
儘管他們生於當時歧視的土地,未能位居高官,沒有機會施展經綸濟世之抱負,但他們以偉大的思想和通達天地人的學術成就,成為我們的典範,永遠活在歷史之中。我謹將這本粗淺的書,獻給偉大的湖南大學者申景濬、魏伯珪、黃胤錫三位大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