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서원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서원이다. 그리 크지도 않고 널리 알려진 서원도 아니다. 그 시작도 후손들이 자신들의 현조 두 분,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를 모신 신안서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 서원은 오늘날 매우 중요하고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신안서원은 건립한 지 얼마지나지 않아 임진란으로 소실되었다. 이에 외선조인 문익점(文益漸)을 모신 도천서원(道川書院)에 함께 모셨으나, 사액을 받으면서 함께 모시는 것이 미안하다고 하여, 출생지인 배양에 배산서원을 세웠다.
하지만 대원군 때 훼철을 당하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배산서원은 후손들이 선조를 모시기 위해 애를 많은 쓰는 여느 서원과 별반 다른 점이 없다고 하겠다. 하지만, 1919에 강당이 준공되고, 1923년 문묘가 완공되어 공자의 유상을 모시면서 완성이 된 배산서당은,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집안의 현조를 모시던 곳에서 동방의 현인 퇴계와 남명까지 모셨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공자까지 모심으로써 유교의 혁신을 주장하며 세운 공자교의 조선 본산으로 되었다.
따라서 신안서원에 대한 소개는 대원군 훼철을 겪기 전까지의 역사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며, 아울러 공자교 본산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라 하겠다.
이 책은 남명학연구소에서 교양총서의 일환으로 경남의 서원을 소개하는 책자 가운데 하나로 마련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교양을 위해 집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서원에 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부족한 가운데, 『배양동(培養洞) 유래(由來)와 배산서당(培山書堂) 경기약사(經紀略史)』(李炳能編, 2001)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에서 또 충분하지 않은 자료는 현지 답사와 후손들의 증언(안내책자의 내용 포함) 등을 토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培山書院是位於慶尚南道山清郡丹城面的一座書院。它既不大,也不是廣為人知的書院。它的緣起是後代子孫們為了供奉他們的兩位先祖——清香堂李源和竹閣李光佑,而在新安書院開始的。然而,這座書院如今卻佔據著一個非常重要且獨特的地位。
新安書院在建成後不久便毀於壬辰倭亂。後來,它與供奉外祖先文益漸的道川書院一同供奉,但因為獲得賜額而覺得一同供奉有所不妥,便在李源和李光佑的出生地培陽建立了培山書院。
然而,在大院君時期,書院遭到了拆毀。在此之前,培山書院與其他為供奉先祖而付出許多努力的書院並無二致。但是,到了1919年講堂竣工,1923年文廟完工並供奉孔子塑像之後,培山書堂的面貌便徹底改變了。它不僅從供奉家族先祖的地方,擴展到供奉東方賢人退溪和南冥,甚至更進一步供奉孔子,從而成為了主張儒教革新的孔子教在朝鮮的總部。
因此,介紹新安書院,探討其在大院君拆毀之前的歷史固然重要,而考察其成為孔子教總部之前的過程,則更是意義重大且引人入勝。
本書是南冥學研究所作為教養叢書系列之一,介紹慶南地區書院的其中一本。儘管旨在為一般大眾普及教養而撰寫,但由於關於書院的資料並不多,因此存在一些困難。在資料不足的情況下,《培陽洞由來與培山書堂經紀略史》(李炳能編,2001)提供了極大的幫助。書中不足的資料,將以實地考察和後代子孫的證詞(包括導覽手冊內容)為基礎進行補充。